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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80’ ‘94세’…40년 전 그 ‘멋’ 그대로

40주년 맞은 KBS ‘전국노래자랑’…유명스타 없이 주민과 함께한 ‘상생과 소통의 공간’



지난 2017년 '송해가요제'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희극인 송해. /사진=홍봉진 기자



지난 5일 KBS 1TV ‘전국노래자랑’ 방송 편에선 특이한 문구 하나가 발견됐다. 부제처럼 쓰인 ‘Since 1980’이 그것. 유명 ‘맛집’ 탐방할 때 흔히 만나는 ‘자부심의 흔적’이랄까. 진행자 송해(본명 송복희)가 나올 땐 신문 기사에서나 볼 법한 나이가 ‘(94)’로 또렷이 새겨졌다.

두 문구는 ‘전국노래자랑’의 상징이다. 프로그램은 올해 40년째 순항 중이고, 진행자는 36년째 ‘전설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40년 전 ‘전국노래자랑’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렇게 오래 ‘버틸’ 거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역은 개수가 정해져 있어 한계점이 분명했고, 유명인이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한 낮은 인지도 때문에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할 ‘시한부 인생’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한계치로 여겼던 지역은 전 세계로 뻗어 ‘세계노래자랑’이 됐고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자랑 놀이는 그 어느 유명인의 무대보다 재미있고 신선했다.

무엇보다 40년 전 그 ‘멋’ 그대로, 형식과 내용 어느 하나 수정 없이 일관적 포맷을 유지해온 국내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그 위상을 보기 좋게 드러낸다. 디지털 기기로 합격 벨소리를 낼 법한데도, 여전히 ‘딩동댕’ 실로폰 소리로 촌스럽지만 정겨운 감흥을 잊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엔 매주 살아있는 우리네 인생을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때문.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동네 아줌마들까지 가세해 객석 춤판이 벌어지고, 못난 이, 잘난 이 할 것 없이 무대에선 똑같은 기회로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정겨운 사연도, 눈물의 인생사도 일요일 낮 12시엔 모두 만날 수 있다.

곱게 챙겨온 출연자의 지역 특산품을 한입 넣으며 품평하는 진행자의 우스갯소리나 진행자를 와락 끌어안으며 ‘기습 뽀뽀’하는 출연자의 천진난만한 애정 역시 팍팍한 삶에 던지는 윤기이자 생기로 비쳤다.

요즘 말로 해석하면, 중장년층에겐 귀중한 ‘레트로’의 유산이고, 젊은 세대에겐 새로 만나는 ‘뉴트로’의 선물이다.



KBS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할담비' 지병수 할아버지(왼쪽)과 진행자 송해. /사진=유튜브 캡처


PD의 분주함과 디테일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하나도 ‘진화’하지 않은 구성에도 모든 음악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고수하는 데는 ‘방목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프로그램은 여러분들이 만드는 겁니다. 마음껏 뛰어노세요” 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사연도 각양각색. 전남 진도군 방송 땐 진돗개 공연단에 소속된 개들이 무대에 올라와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는, 시쳇말로 ‘개판’이 연출되기도 하고 유튜브 시대에 걸맞게 ‘미쳤어’를 부른 ‘할담비’ 지병수 할아버지를 스타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노래자랑을 사랑한 지명수배자가 출연했다가 시청하던 경찰에 잡힌 일도 있다. 극강의 노안(老顔)이었던 60대가 99살로 속이고 출연했다가 신분 세탁에 복권 위조까지 일삼은 범죄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진행자 송해다. 지난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사실은 그가 달변가라는 점이다. 그 재능은 방송 곳곳에서 즉흥적으로 터져 나온다. 황해 재령 출신인 송해는 인터뷰에서 늘 “고향에서 방송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는데, 그 꿈은 2003년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 이뤄졌다.

송해는 그 당시 일화를 이렇게 기억했다. “평양 공원 소원은 이뤘는데, 거기서 저는 ‘갑종 반역자’였어요. 6.25 때 총 들고 싸우고 반공영화에 출연하니 저를 반기겠어요? 분위기가 썰렁할 때 키 큰 양반이 무대에 올라왔는데, 제가 ‘아이고 형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절을 하니, 그제야 다들 웃더라고요.”

1980년 11월 9일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에 송해는 4년 뒤 합류했다. 이후 30년 넘게 구설수 한번 없이 오롯이 이 프로그램을 지켜낸 비결은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 송해는 “부탁이나 로비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며 “점심 도시락도 우리가 다 해결한다”고 했다.



지난 2016년 서울 여의도 KBS별관에서 열린 '제28회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TV 진행자 부문을 수상한 희극인 송해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그는 소문난 애주가이면서 섬세한 관찰자다. 그와 대작(對酌)할 때 상대방이 한 잔이라도 놓치면 “지금까지 2잔 덜 마셨는데” 하고 넌지시 던지는 디테일은 최고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고 배삼룡 상가에서 ‘수사반장’의 모델인 최중락 에스원 고문과 소주 2상자를 나눠 마신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자연스레 건강 문제로 연결지을 때, 그는 “다른 거 없다”며 “좋은 사람들과 맘 편하게 술 한잔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된다”고 말했다.

매주 지방을 찾는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역 목욕탕을 찾는 것이다. 목욕하고 재래시장에서 주민들과 순댓국 먹는 절차에서 소통은 시작되는 셈이다. 그는 “나는 사람 만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다”고 했다.

현재 감기로 병원 치료를 받는 송해는 제작진을 통해 “큰 이상이 없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알려왔다. 오는 12일 설 특집 방송에는 대체 MC(임수민 아나운서, 이호섭 작곡가)가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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