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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수도사들은 맥주를 왜 만들었을까

[신혜선이 만난 사람들]<12> '크래프트 맥주' 전도사 이인기 비어포스트 발행인 "소비의 선택과 창업, 두마리 토끼 가능하다"



크래프트 맥주 '시메이'를 만드는 벨기에 시메이(Chiymay) 수도원 전경. 시메이 맥주는 벨기에 트라피스트 수도회에서 인증한 맥주 중 하나다. 세계에서 트라피스트 인증을 받은 크래프트 맥주는 단 열두개다. /사진제공=비어포스트




"맥주가 거기서 거기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죠. 맥주는 장인 정신으로 자기만의 레시피를 토대로 만든 음식입니다. 머리가 있어야 맥주를 만들 수 있죠.크래프트 맥주 확산은 맥주 민주화의 첫걸음입니다." 이인기 비어포스트 발행인의 일성이다. /사진=


◇ 몇 종류 맥주를 먹어봤나요? 맥주 맛은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 유럽도 미국도 있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한국서 크래프트 맥주는 불가?
◇ 샴페인 맛부터 초콜릿·자몽 맛까지…너무나 모르는 맥주 그리고 장인의 세계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저녁 놀’(박목월 ‘나그네’ 중)

술을 나라의 허가 없이, 개인이 빚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술 익는 냄새는 이처럼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전문학에서나 만나는 모습으로 상상할 도리밖에 없다.

여기서 질문. 당신이 어른이고 술을 좋아한다면 지금까지 몇 종류의 술을 먹어봤는가. 조금 더 좁혀보자. 당신은 몇 종류의 맥주를 먹어봤는가. 평생 국산 맥주 두 가지만? ‘싱겁다’고 투덜거리면서? 요즘은 ‘1만 원에 네 캔’하는 외산 맥주를 즐긴다고? 여름날 시원한 갈증을 풀어주는 한 모금이면 되고, 그보다 더 좋은 한국표 ‘소맥’을 애정하고, 맛있다 해도 비싼데 굳이? 여러 이유로 “맥주가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지. ‘크래프트(craft 수제) 맥주’ 애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누군가, 어떤 힘으로 우리의 기호를 통제당하는 거라면요? 사람은 마음먹으면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있는 존재 아닌가요. 문득, 소설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나오는 개미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무서워하는 커다랗고 둥근 공은 사람의 손가락일 뿐인데. 그것을 깨야겠다고 생각했죠.”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크래프트 맥주 대중화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한 이인기 ‘비어포스트’ 발행인의 일성이다.

그깟 술, 맥주 이야기인데 존재론까지 나오니 무겁다. 그러다 음식을 둘러싼 자본과 권력, 어쩔 수 없는 소비를 강요받는 음식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떠올리니 맥주 역시 음식이라는 점에서 예외로 둘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럼 질문을 시작하자. 크래프트 맥주가 뭔데? 대규모 공장이 아닌 소규모 양조장에서 장인 정신을 갖고 만든 맥주를 일컫는다. 지난 2002년 유행처럼 지나간 ‘하우스 맥주’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하우스 맥주는 지금의 크래프트 맥주와 비슷한 개념인데 술집 외에 일반 유통이 불가했다. 그 결과, 서울 시내 몇 개 전문점만 살아남았다. 당시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입맛에 국내 맥주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잠시 장려했다는 후문이 떠돌았다.



세계는 넓고 맥주도 많다. 그 맥주의 맛은 제각기다. /사진제공=비어포스트

비어포스트는 크래프트 맥주 전문 월간지다. 지난 연말 발행한 12월호가 24호, 딱 2년 됐다. 크래프트 맥주 전문지로는 국내 최초다.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게 돼 공부하고 월간지까지 발행하다니. 고정 독자는 3천명. 총천연색의 잡지는 예상대로 적자였다. 이게 다가 아니다. 청년 창업과 연계해 성수동 재래시장 안에 전문집 ‘슈가맨’을 열 수 있도록 ‘코칭’ 했다. “직접 하려고 했더니 만 40세까지만 청년이어서 자격이 안 되더라고요. 하하하.”

오는 3월에는 서울 문래동에서 또 일을 벌인다. 도대체 크래프트 맥주 사랑이 어느 정도이길래.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잘 안됐어요. 뭐라도 해야 했던 시절에 만난 거죠.” 인사동에서 카페를 하는 선배가 장사가 안돼 아이템 변경을 도와달라 했다. 일종의 카페 변신을 구상하면서 좋아하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슈가맨 간판을 걸고 크래프트 맥주를 팔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 정도였는데, 공부하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이제는 '맥주로 평화를'이라는 구호를 외치기에 이르렀다.

성수동 뚝도 시장에서 슈가맨을 운영하는 김성현 대표는 인사동 슈가맨에서 일했던 1호 직원이었다. 뚝도 시장 슈가맨은 재래시장과 연계한 청년 창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크래프트 맥주도 주변 상권에서는 특화 상품인데, 여기에 ‘시장 상생 메뉴’를 얹었다. 순대, 떡볶이, 통닭, 홍어 등 시장 안주를 주문하고 상인들과 수익을 나눈다. 이 대표는 슈가맨 옆에서 작은 크래프트 상점을 운영한다. 평택 슈가맨 개업도 지원했으니 자·타칭 ‘슈가맨 파운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잡지까지 발행한 이유는 그만큼 국내에 정보가 없어서다. “아마존에서 원서로 맥주에 관한 책을 주문해 읽었는데, 우리는 완전히 소외돼있더라고요. 평생 내가 먹은 맥주가 뭐였지 돌아보니, 정보를 축적하고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이 직접 만들어 파는 의미에서 한국 크래프트 맥주 역사는 없다. 지난 2014년, 주세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처음 유통할 수 있게 된 게 시작이다. “이제 태동기죠. 2014년 법 개정에 큰 역할을 한 분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입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됐어요.”

이 발행인은 술만큼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 비즈니스도 없다고 말한다. “맥주가 양주나 소주랑 세율이 똑같은 거 아세요? 도수가 더 높은 와인(14~15도)은 맥주 세율의 절반 이하고요. 거의 도수 기준으로 세율을 부과하는 것과 너무 다르죠.”

원래 맥주의 재료는 몰트(말린 보리 싹)나 홉(향기와 쓴맛 조절 풀), 효모(이스트) 그리고 물, 이렇게 딱 네 가지다. 홍초 맛이나 꽃향기, 과일 향기가 난다고 향료를 첨가하는 게 아니다. 볶는 정도에 따라, 섞는 비율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재료 보관도, 술에 들어가는 레시피도 다 다르니 자기 이름을 가진 모든 크래프트 맥주의 재룟값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같은 세율을 적용하니, 크래프트 맥주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상업용 맥주에 도전하는 일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이인기 비어포스트 대표 인터뷰

“전통주에는 세금 혜택을 줍니다. (제 생각인데) 전통주는 큰 사업자가 없고 ‘전통’이라는 명분 때문에 봐주는 느낌입니다. 시장 진입 허들(장벽)을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만약, 크래프트 맥주 세율을 낮추면 어떻게 될까요? 대기업이나 대형 수입 상업 맥주 기업 쪽에서 난리 날 겁니다. 크래프트 맥주 가격이 낮아질 거고, 저변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니까요. 우리끼리 크래프트 맥주 확산을 ‘맥주 민주화’라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하하하. 크래프트 맥주 유통을 허용하는데 애써주신 홍 장관도 이런 접근에 동의하셨죠.”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이 발행인은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전체 맥주 시장의 1% 정도로 본다. 국내 맥주 시장은 4조7300억원 규모, 국내 크래프트 맥주는 400억원 전후 정도로 파악한다. 수입 크래프트 맥주 규모는 추정하기 어렵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90개 정도입니다. 올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건배 주로 크래프트 맥주(‘세븐브로이’ 강원도 횡성)가 채택되면서 국민 관심이 높아졌죠. 없어서 못 팔았을 겁니다.”

이 발행인은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가 막 시작됐다고 본다. 몰트 등 핵심 재료를 수입해야 하지만 지역마다 사람마다 고유한 레시피로 만든 한국 크래프트 맥주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더디지만, 소비층도 늘어나고 있다.

술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부가 지원하는데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 발행인은 “인식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술장사를 천시하는 시각이죠. 하지만 바뀔 거로 봅니다. 커피에 대한 인식이 바리스타와 로스터라는 전문가 중심으로 바뀌었듯 크래프트 맥주도 전문가들이 끌고 가고 있으니까요. 국내 비어 소믈리에는 150명 정도밖에 안 될 걸요. 브루어, 브루 마스터가 생겨나고 있으니 청년 창업, 일자리 창출 기회로 이어질 거로 보고요.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한다는 건 말 그대로 중소기업이 늘어나는 겁니다. 미국은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6000개가 넘습니다. 거기에 5명씩만 근무해도 엄청난 숫자 아닌가요? 각 상품을 파는 펍(Pub)이 10개만 되면요? 일본은 사케 양조장을 지역별, 몇 대를 잇는 장인 정신 이야기로 엮어 산업화했죠. 크래프트 맥주도 그렇다고 봅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폭음, ‘주폭’ 문화를 바꿀 계기도 될 수 있고요.”

우리의 미각이 누군가에 대해 좌우되고 있다는 말은 아주 틀리지 않는다.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애초 맛의 세계를 알 기회를 차단한 힘이 작용한다면 한 번은 의심할 만하다.

“크래프트 맥주에 눈을 뜨고, 내가 누군가가 쳐 놓은 그물에서 헤엄치고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좀 화가 났다”는 이 발행인은 “2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과 24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은 같을 수 없다”고 말한다.

“벨기에 가서였어요. 어떻게 맥주가 이런 맛이 가능하지?" 이 발행인은 크래프트 맥주를 사랑하는 음악에 비유했다. "음악은 어느 때는 뼈와 근육 사이를 파고 들어 내 몸을 위로하고 만져주죠. 음악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다는 느낌을 알았는데 맥주가 그렇더라고요. 창의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크래프트 맥주의 맛에 도전하길 권합니다.”

▶와인만큼 커피처럼…소박한 이야기가 넘치는 맥주의 세계



트라피스트 인증을 받은 '베스트블레테렌12'을 만드는 벨기에 성식스투스 수도원. 크래프트 맥주 마니아들은 베스트블레테렌12을 최고의 맥주로 꼽는다. /사진제공=비어포스트

‘비어바나'(BEERVANA)는 미국 북서부 오레곤주 포틀랜드시의 별칭이다. 맥주 양조장이 80개가 넘는다. 야키마 밸리(홉 생산지)와 가깝고 물이 좋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힙스터’(hpster)들의 도시로 통한다. 힙스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소비를 하고 다른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주류에서 벗어나지만 자기만의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미국에서 좋은 맥주 찾아다니는 ‘비어 헌터’가 있는데, 이들이 찾아가는 도시가 ‘비어바나 포틀랜드’다. 맥주의 시작이 독일 등 유럽이었지만, 크래프트 맥주조차 산업화에 으뜸인 미국에서 꽃을 피운 결과다.

독일은 500년 전 ‘맥주 순수령’을 공포해 몰트, 홉, 이스트, 물 이 네 가지 재료 외에는 못 넣게 했다. 벨기에는 이와 반대로 고수씨나 오렌지필 등을 넣어 호가든 같은 맥주를 만들며 다양화를 추구했다. 크래프트 맥주를 아는 이들은 ‘벨기에 크래프트 맥주의 이유 있는 1승’에 토 달 이 없다고 한다.

벨기에의 크래프트 맥주를 말하면 트라피스트 인증을 빼고 갈 수 없다.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자신들의 레시피를 지켜 만드는 맥주에 대해 ‘트라피스트인증’(http://www.trappist.be)을 주고 있는데, 세계에서 아직 12개 양조장밖에 인증마크를 받지 못했다. 어떤 수도원에서는 전수자를 지정해 도제식으로 맥주 레시피를 전수한다고 하니, 이 맥주는 무형문화재나 다름없다.

이 발행인은 트라피스트 인증 맥주 중 성식스투스 수도원에서 만든 ‘베스트블레테렌 12(Westvleteren 12)’을 최고로 꼽았다. "세계 최고의 맥주는 벨기에의 작은 수도원에서 나온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마니아라면 모두가 극찬하죠."



맥주와 홉. 홉은 향과 쓴맛을 조절하고, 단맛과 색깔은 몰트가 맡는다. /사진제공=비어포스트



로스팅 정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맥아(몰트). 흔히 말하는 흑맥주는 오래 볶은 몰트를 사용한 맥주다./사진제공=비어포스트

맥주가 발효주임은 상식이다. 몰트에서 추출한 당분을 효모(미생물)가 발효시킨다. 효모가 당을 먹으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태어난 술이 맥주다. 밀 몰트를 40% 이상 넣으면 밀 맥주가 된다. 인위적인 향 첨가가 없어도 오렌지 향, 자몽 향이 나는 이유는 향과 쓴맛을 조절하는 홉과 단맛과 색깔을 맡는 몰트의 비율과 균형(로스팅 등)을 잡아줘서다. 오래 볶은 몰트는 흑맥주의 색깔과 단맛을 결정하는 시작점이다. 이 발행인은 “맥주를 만드는 데는 머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산 재료로는 만들 수 없을까. 답은 ‘어렵다’. 몰팅 기술이 부족해서다. “몰팅 기술은 보리에 싹이 틀 때 건조하는 게 핵심입니다. 밭에서 자연 건조가 힘들다는 거죠. 보리 싹을 건조하는 이유는 보리가 단단해서 그 상태로는 효모가 (당을) 못 먹기 때문입니다. 보리 싹을 말리는 그 공정이 복잡해 시설을 갖추려면 투자비가 많이 들죠. 비용과 맥주 가격 책정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몰팅 기술이 더 발달하기 전까지는 수입하는 방법밖에 없죠. 제주에서 제주 보리로 몰팅해 맥주를 만들고 있긴 한데, 쉽지 않다는 게 대체의 평가입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과정에서 나온 고유한 맛 때문이다. 이 발행인은 “기쁠 때 우울할 때, 좋은 만찬에서 식전주로,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말한다. 디저트에 적합한 맥주도 있다. "아, 각 맥주는 향이 다 다르니 고유한 잔에 먹는 게 좋습니다."

맥주는 와인이나 커피만큼 이야기가 넘친다. 벨기에 북부 지역의 ‘두체스 드 브루고뉴’(Duchesse de Bourgogne)는 붉고 새콤달콤해 샐러드, 채소와 어울리며 식전주(샴페인 맥주)로 주로 먹는다. 두 체스(황비)는 피노 누아로 알려진 브르고뉴 공국의 마지막 황비다. 20대에 사고로 사망하자 황비를 추억하고자 만들었다.

‘파이어스톤워커(Firestone Walker) 이지잭 IPA(Easy Jack IPA)’는 홉의 역할이 강조된 맥주다. 홉의 양에 따라 꽃향기와 풀냄새, 오렌지, 자몽 맛 등으로 달라진다.

옛날 영국 맥주(에일)는 몰트 기술이 없어서 색깔이 밝았는데, 이를 ‘페일(pale)에일’로 불렀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인도에 맥주 보내려면 적도를 두 번 지나야 했는데 맥주가 다 상했다. 레시피를 바꿔 홉을 많이 넣었더니 향이 풍부하고 상하지도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인디아 페일 에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가장 인기 있는 크래프트 맥주 타입이라고 한다.



베스트블레테렌 12/사진제공=비어포스트

족히 두 시간을 듣다 보니 “맥주는 레시피가 필요한 술이다”는 참 명제였다. 더불어 ‘물 타지 않은 맥주’라는 광고는 우리가 어떤 맥주를 먹었는지를 드러내는 뻔뻔한 고백임을, 싱겁다고 하면서도 크래프트 맥주에 눈을 돌리지 않는 현실을 새삼 느꼈다.

이 발행인이 기자에게 맛을 보이기 위해 벨기에 수도원서 개인용으로 사온 베스트블레테렌 12를 내놨다. 예약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귀한 술. "이 맥주를 왜 만들게 됐느냐"는 질문이 무색했단다. "(수도사들이) 목말라 만들었다"는 무미건조한 답이 돌아와서다. 이 수도원이 연간 맥주 생산량을 제한하고. 인증마크를 부여하면서 너무 많은 영리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담은 이유가 이해됐다.

“모든 크래프트 맥주에는 맛과 더불어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이 발행인의 말에 수긍하며 마신 한 모금. 쌉쌀하면서도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에 잠시 침묵했다. 6시간이 넘는 기도를 마치고 갈증을 풀기 위해 들이킨 후 빙긋 웃는 수도사의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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