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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품점 창업했던 30대女, 스탠딩코미디 하는 이유는

[피플]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아동 성추행 피해 경험 주눅 든 어린 시절…성교육 강사 활동·여성 코미디언 모임 조직하며 이제는 '버팀목' 역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푸른아우성 소속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정윤씨. /사진=한고은 기자


"성인용품점 고객 중에는 50~60대 여성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들은 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결여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요. 이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것도 ‘재미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입문하게 됐죠.“

성교육 강사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최정윤 씨(34)의 이력은 독특하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AP와 LA타임스에서 서울 주재 기자로 일했고, 2015년 서울 합정에서 성인용품점을 창업했다.

지금은 낮에는 성교육 강사 구성애씨가 대표로 있는 푸른아우성 재단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교육 활동을 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 성에 대한 얘기를 유쾌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상암동의 한 사무실에서 최 씨를 만나 코미디와 성교육을 접목한 그의 얘기를 들었다.

"중학교 때 굉장히 수더분하고, 재밌게 성교육을 하던 구성애 선생님을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그리고는 그 스스로가 성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름과 얼굴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었어요."

그 역시 구성애 씨와 마찬가지로 아동 성추행 피해자였다. 자신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생각과 내가 '하자품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자존감 낮은 10대를 보냈다. 하지만 구 씨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찾았다. 성을 무겁고, 엄숙하기보다 밝고, 건강하게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렇게 싹틔운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 대학 유학시절에 접했다. 한국에서는 나름 '개그 캐릭터'였는데 '조용한 동양인'으로 살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우울감에 방에 틀어박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최 씨는 "당시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인 마거릿 조(Margaret Cho)가 엄청난 인기였고, 동양인이 주류가 되기 힘든 사회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직접 무대에 선다는 건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없는 자원을 끌어 유학을 보내준 부모님도 생각해야 했고, 조별과제 발표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나서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일을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더이상 끌려가는 인생은 싫다는 생각에 만 서른을 앞두고 성인용품점을 창업했다. 하지만 용품점을 찾은 고객들을 보면서 어떤 즐거움을 찾기 이전에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생활에 던져지고, 그런 상황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마침 성교육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푸른아우성 재단이 용품점과 가까운 마포구에 있었다.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또 재미있게 풀어놓을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최 씨는 2018년 2월 처음으로 스탠드업 무대에 올랐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여성은 최 씨 혼자였다. 2018년 11월, 최 씨는 동료들과 '블러디퍼니'라는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를 만들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 입문하려는 여성들만을 위한 '블러디퍼니 오픈마이크'도 열고 있다. 어릴 적 구성애와 마거릿 조를 보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재미에 눈을 떴던 것처럼 이제는 최 씨도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힘없는 사람이나 소수자를 때려 누르는 '펀치다운(Punch-down)'이 아니라 아무도 비틀지 못하는 힘 있는 사람을 때리는 '펀치업(Punch-up)'이 좋은 코미디입니다. 저는 성을 어둡고, 무겁게 가둬놓으려는 성엄숙주의를 펀치업 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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