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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청소노동자, 왜 버려진 경찰 바지 주워 입었나

[분리수거된 노동자]③올해 '11.5조' 경찰 예산 중 청소노동자 몫 0원

편집자주|어느 기관이나 회사가 겉보기에 '멀쩡'히 운영되는 과정에는 안 보이는 곳에서 궂은 일을 맡은 분들의 꾸준한 노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같은 '숨은 노동'을 제공하는 분들일수록 처우역시 가려지는 일이 허다한데요. 머니투데이 사건팀은 가까운 곳부터 '숨은 노동자'의 공간을 점검해보려 합니다.




2020년 한해 경찰에 배정된 예산은 11조5800억원이다. 경찰은 이 예산을 나눠 치안유지와 청사관리 등 안팎 살림을 하게 된다. 이 가운데 경찰 청사 청결을 유지하는 청소노동자 환경개선에 배정한 예산은 얼마일까. 정답은 0원이다.

필요할 때마다 운영비의 일부를 떼 청소노동자들이 필요한 용품 등을 사고 있지만 본래 예산이 없는 만큼 환경개선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예산 없이도 당장 할 수 있는 환경개선은 청소노동자에 대한 외면 끝에 뒷전으로 밀렸다. 경찰의 무관심이 함께 생활하는 청소 노동자를 악취 나고 비좁은 휴게실로 내몬 셈이다.



휴게실이 쓰레기장 옆인데…경찰 "예산이 없다"


13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10조9470억원, 올해 11조5800억원을 예산으로 배정받았다. 이 가운데 청소노동자의 휴게실 환경개선을 위한 비용은 0원이다.

애초부터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셈이다. 경찰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2018년 7월부터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이전에는 외주용역에 의존한 탓에 별도 예산을 마련하지 않았고, 1년 반 전부터 인원 증가에 따른 예산 배정 필요성에도 정작 예산을 따로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2020년도 예산 계획에 청소노동자 휴게실 개선을 위해 배정해놓은 것은 없다"며 "그동안 용역을 줘 왔기 때문에 직접고용 후에 이들을 위한 별도 예산을 미처 고려를 못 했다"고 설명했다.

관련 예산이 없다 보니 청소용품과 비품마저도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들은 작업복·방한도구·방진마스크 등을 지급받지 못했다.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목장갑밖에 받은 게 없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노동자도 "패딩은 내가 사비로 마련한 것이고 바지는 버려진 경찰 바지를 주워 입은 것"이라 말했다.



돈도 돈이지만…문제는 '경찰의 무관심'




경찰청 본청. /사진=뉴시스



청소노동자 휴게실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경찰은 관련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시설·장비 유지비' 등 기존 예산을 덜어내 해결했다. 본래 용도에 맞지 않은 예산을 사용하다 보니 청소노동자는 항상 뒷순위로 밀렸다.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 관계자는 "원래 목적대로 사용하기도 빠듯해 청소노동자 여건 개선을 위해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지적했다.

문제는 예산이 없어도 건물 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는 등 휴게실 환경 개선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노원경찰서는 1990년 지어진 노후 건물이지만, 지난해 11월 말 본관 6층에 경찰 휴게실과 동일한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마련했다. 예산은 핑계고 본질은 무관심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주무관노조 관계자는 "경찰서가 오래돼 공간이 좁고 예산이 부족해도 결국 관심을 가지면 해결할 수 있다"며 "경찰이 필요한 것을 마련할 때처럼 관심을 가져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적극 처우 개선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머니투데이 보도 이후 경찰청은 일선서에 지시해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 파악을 지시했다. 민갑룡 경찰청장 역시 휴게실 상태가 열악한 일선서 순으로 개선에 예산을 내려보내도록 지시했다.

종로서는 올해 상반기 의경방범순찰대가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 휴게실을 설치할 계획이다. 성동서도 남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찾아 규정에 맞는 휴게실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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