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휴리스틱스

반도체·바이오주 돌아왔지만…투자자 베팅 못하는 이유

[행동재무학]<282>반도체·바이오주 투심 회복에도 공격적 베팅 망설이는 이유…‘앵커링 효과’

편집자주|투자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알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집 나갔던 반도체주와 바이오주가 (올 가을에) 돌아왔다. 그런데 또 나갈까 봐 걱정이네요."

오랫동안 부진을 면치 못한 반도체주와 바이오주가 올 가을에 악재를 하나둘씩 털어내고 부활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마치 가을 전어철에 ‘집 나갔던 며느리도 다시 돌아온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국내 증시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단연 반도체주와 바이오주다. 코스피 시장에서 시가총액 순위 1,2,3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우 등 모두 반도체주고, 바이오주는 코스닥 시총 상위 톱 10 종목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코스피 시총 상위 7위(셀트리온)와 8위(삼성바이오로직스)도 바이오주다. 따라서 반도체주와 바이오주의 부침에 따라 국내 증시는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그만큼 반도체와 바이오주의 영향이 크고 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사이클 고점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 5월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자 코스피지수는 동반 약세에 빠졌고, 이후 거의 1년이 넘도록 반도체 사이클이 바닥을 쳤는지에 대한 분석에 따라 증시 전체가 등락을 반복해 왔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5월 2일 2516.57을 찍은 뒤 올 8월 6일 1891.81을 기록하기까지 25% 가까이 하락했다.

그러다 삼성전자가 이달 8일 발표한 올 3분기 실적(잠정)이 예상치를 크게 초과하자 투자자들은 반도체 경기가 이제 바닥을 치고 내년엔 회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공고히하는 모양새다. 주가는 이러한 긍정 전망을 선반영해 이미 9월에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우 전부 다 1년 새 최고가를 기록했다.

바이오주는 올 4월 말부터 폭락에 가까운 하락세를 기록하며 줄줄이 떨어졌다. 6월 에이치엘비 임상 실패 쇼크에 이어 7월에 한미약품 신약 개발 실패, 신라젠 항암제 무용성 평가 실패 등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임상을 진행 중인 바이오주 전반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코스닥지수는 올 4월 15일 770.66에서 8월 6일 540.83으로 떨어지며 약 4개월 동안 30% 급락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에이치엘비의 글로벌 임상 3상 성공을 기점으로 이달 4일 세계 최대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신라젠 지분 추가 매입, 7일 헬릭스미스의 신약 후보물질 임상 3상 성공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해당 주가는 상한가까지 치솟았고 투자자 신뢰를 잃었던 바이오주 전반에 대한 투심도 덩달아 회복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증시 전체에도 덩달아 온기가 돌아야 하는데 여전히 냉기가 느껴진다. 투심 회복이 반도체와 바이오주에 국한되고 아직 증시 전반으로 확산하지 못한 모양새다. 투자자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반도체와 바이오주가 다시 나갈까 봐 걱정하며 섣불리 공격적인 베팅에 나서지 못 하고 있다.

반도체와 제약·바이오 업종을 대표하는 KRX 반도체지수와 KRX 헬스케어지수는 9월 초 이후 현재까지 각각 9.6%와 5.7% 반등했지만, 증시 전체 움직임을 보여주는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3.7~3.9% 상승에 그치고 있다. 전체 증시의 반등폭만 놓고 볼 때 투자자들은 아직 공격적인 투자로 전환을 망설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국내 증시의 양대 매수세력인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수 규모 역시 증시 반등을 이끌 만큼 강하지 않다. 외국인은 9월에 삼성전자를 2919억원 사들였지만 10월 들어 현재까지 50억원 순매수(10일까지는 -808억원 순매도)에 그쳤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우는 여전히 순매도 포지션을 고수하고 있다.

기관은 9월 초 이후 현재까지 반도체주(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자우)에 대해 1조1680억원을 대규모 순매수하며 공격적인 베팅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인이 동조하지 않는 탓에 그 효과가 반감됐다. 바이오주는 셀트리온, 에이치엘비 등 몇몇 종목을 제외하면 외국인의 10월 순매수 상위 종목에 바이오주가 없다. 기관도 매한가지다.

코스피시장 전체에서 외국인은 9월 초 이후 현재까지 -1조3537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기관이 -8578억원 순매도했다. 이렇듯 외국인과 기관은 여전히 신중한 매매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공격적인 베팅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미중 무역협상의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한다. 반도체 업종의 실적 개선 기대감과 바이오주의 수급여건 개선 등 펀더멘털이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미중 무역협상의 불안 심리가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증권방송 cnbc의 매드머니(Mad Money) 프로그램 진행자인 짐 크레이머(Jim Cramer)는 미중 무역협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진 섣불리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지금 많은 투자 전문가들이 미중 무역협상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불확실성이 지속되겠지만 국내 증시를 둘러싼 여러 여건들은 향후 경기 개선과 주가 상승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큰 폭의 주가 하락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중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권고한다.

예컨대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매크로팀장은 "글로벌 경기가 2017년 하반기부터 2년 가까이 수축기가 진행된 만큼 현재는 경기 저점에 와 있다"며 "각국 정부의 확장적 정책과 기저효과 등으로 연말에는 경기 반등을 전망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여전히 걱정이 많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심리 상태와 행동을 행동재무학에서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로 설명한다. 반도체와 바이오주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 기업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과 수급여건 개선 등 펀더멘털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와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신중한 매매를 유지한 채 공격적인 베팅을 망설이는 까닭은 투자자들이 과거의 판단 기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앵커링 효과란 특정한 기준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심리를 말한다. 예컨대 삼성전자를 5만원에 판 사람은 이 가격이 기준점으로 굳어져 이 후 반도체 업종이 회복돼도 삼성전자는 5만원 이상 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마치 배가 한 번 닻을 내리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모습과 같다. 앵커링 효과가 강한 사람은 과거의 정보에 구속돼 새로운 정보를 매우 늦게 받아들이거나 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최근 증시 펀더멘털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투자를 늘릴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도 앵커링 효과 때문이다. 앵커링 효과가 강한 투자자들은 하락장에서 상승장으로 전환되는 터닝 포인트에서 너무 늦게 대응하는 통에 남보다 손해를 볼 때가 많다.

때마침 11일 미중 무역협상이 부분합의에 도달했다는 좋은 소식까지 나오면서 이제 증시에 남아 있던 마지막 악재마저 서서히 해소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제 투자자들이 앵커링 효과에서 벗어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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