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일반

은퇴한 아빠의 꿈 찍으러, '파리'로 따라간 아들

민병우 감독 영화 '몽마르트 파파', 아들이 담아낸 아버지의 '인생 2막' 이야기





아들이 정년 퇴임을 앞둔 아버지에게 물었다. 은퇴하고 뭐 하실 거냐고. 중학교 미술 교사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는 그때마다 "다 생각이 있지"란 짤막한 말로 답하곤 했다. 구체적인 얘긴 해주지 않았다.

아들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러나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걸 직접 찍어보기로 했다. 9일 개봉한 영화, '몽마트르 파파'는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아들 민병우 감독이, 아버지 민형식씨가 꿈꾸던 '인생 2막'을 고스란히 담았다.



5살 때부터 들었던 아버지의 꿈, '몽마르트 화가'






민씨의 꿈은 프랑스 파리에 가는 거였다.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 '거리 화가'가 되겠다고 했다. 34년을 교직에 몸담았던, 그가 오래도록 간직한 꿈이었다. 그걸 몰랐던 가족들은 '반신반의'했다. 민씨 아내 이운숙씨는 "네 아빠가 파리에 가면 내가 장을 지진다"며 놀렸다. 영화에선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일종의 '악역(?) 전문가'다. 민 감독도 '설마 아버지가 정말 파리에 갈까', 그런 맘이었다.

그만큼 아버지를 잘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민씨는 5살 때부터 프랑스 파리에 가겠단 얘길 입버릇처럼 했다. 실제 민씨는 결혼한 뒤 프랑스 유학을 가려고 했다. 이씨가 만류했고, 민씨 역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그리 오래도록 꿈을 품고만 살았다. 가장이란 무게가 대부분 그렇듯이.

영화는 민씨의 마지막 수업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는 민 감독이 처음 보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이었다. 학생들 그림을 하나하나 봐주면서, 50분간의 수업도 그리 끝이 났다. 카메라가 비추는 민씨 표정은 덤덤한 듯, 복잡 미묘했다. 퇴임식이 있었고, 공로패를 받았고, 오랜 교직 생활은 그리 끝이 났다.

그걸 본 민 감독은 '카메라를 안 들었으면, 퇴임식에 갈 일도 없었겠구나', 그런 생각에 기분이 뭉클하고 복잡했단다. 그래서 영화가 잘 되든 안 되든,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파리에 간 아버지는, '아이'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어학원을 다닌단 아버지 얘기를 듣고 민 감독은 "아버지가 진짜 파리에 가려고 하는구나" 깨닫게 됐다. 아버지 꿈을 응원하는 아들이, 옆에서 도움을 줬다. 몽마르트 화가가 될 수 있도록, 프랑스어를 잘하는 친구를 소개해 주고 필요한 서류를 챙겨 보내주기도 했다.

12월 겨울, 마침내 가족들과 파리에 도착한 민씨는 마치 아이처럼 날아다녔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에, 처음 오는 거였다. 거리를 걷기만 해도 행복해했고, 에너지가 무척 넘쳤다. 에펠탑이며, 사크레쾨르 성당이며,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걸 매일매일 캔버스에 담았다. 새벽에 불이 켜져 있어, 민 감독이 나가보니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만큼 간절히 바란 꿈이었다.

민씨는 꿈에 그리던 몽마르트 언덕에 올랐고,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팔기 시작했다. 뼈가 시린 강추위 속에서도, 열정이 식을 줄 몰랐다. 비가 와도 서서 그림을 그렸다. 지나가는 이들이 구경했고, 때론 엄지를 치켜세우고 갔다. 그런 아버지를 고이 담아야 했다. 렌즈에 물이 튀고, 손이 시려도, 촬영을 멈출 수 없었다.

민 감독은 그제야 아버지 그림이 새삼 다시 보이기 시작했단다. 평생 집안 곳곳에 걸려 있어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그림이었다. 별 감흥이 없었다. 어머니 이씨도 "네 아버지 그림 실력이 별로 없다"며 농담했었다. 그런데 몽마르트 언덕서 본 아버지는 누구보다 빛났다. 아버지도 아니고, 교사도 아녔다. 그저 꿈을 순수하게 화폭에 담아내는 청년 같달까, 진정 멋진 '거리 화가'였다.



"당신의 꿈은 뭐였나요?" 영화가 던지는 '화두'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버지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민형식씨라는 '한 사람'으로 알아가는 아버지 모습이다. 평생을 짊어졌던 역할을 오롯이 벗어던졌을 때, 정말 좋아하는 걸 했을 때,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 다름 아닌, 아들 민 감독이 83분 내내 오롯이 담아냈다. 철저히 아들의 시선에서 담은 다큐멘터리다.

평생을 지켜봐도 잘 몰랐던 모습이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월급을 가져오고, 주말엔 때로 낮잠도 자고, 그래서 그냥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파리에 갔고, 가까이서 지켜보니 그게 아녔다. 사진으로만 보던 고흐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실제 봤을 때, "이런 색감이 나올 수 없다"며 감탄했을 때,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민 감독은 "아버지는 그냥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라 단순히 생각했는데, 이리 입체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다.




또 하나는 은퇴 후 꿈에 대한 생각이다. 은퇴자들 대부분, 꿈이란 걸 오래도록 잊고 살았고 한편에 미뤄둔 채 그러려니 살았다. 영화는 몽마르트 언덕서 그림을 그리는 민씨를 보여주며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그리고 누구나 다시 꿈꿀 자유가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실제 이룰 수 있다고 용기와 위로를 건넨다.

그러니 민씨는 몽마르트 언덕서 그림을 팔면서도, "그림을 파는 건 크게 중요치 않다"고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도 그림을 팔아야지"라 생각했던 민 감독은, 파리를 떠나는 순간이 돼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래서 민씨는 몽마르트 언덕서 그림을 팔았을까, 못 팔았을까. 그건 영화를 끝까지 보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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