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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제독'을 찾아서…그을린 피부와 주름엔 '고뇌'가 담겼다

[찐터뷰 : ZZINTERVIEW]23-②사료와 예술적 상상력으로 복원해본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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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랑 작가의 2013년 이순신 장군 미니어처(6분의1 크기)/사진=김세랑 홈페이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순신 장군이 '선비같은' 모습인 이유는 국가표준영정의 영향이 크다. 장우성 화백이 1953년 그린 영정. 이순신 장군의 절친이기도 한 류성룡이 "용모는 단아했으며, 항상 몸과 마음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고 '징비록'에 쓴 것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영정의 국가표준영정 지정 해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우성 화백의 친일 논란도 있었지만, '무관'이라기 보다 '문관'에 가깝게 묘사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란 지적 역시 적잖았다. '인간 이순신'이 실제로 겪었던 고뇌, 삶의 궤적과 차이가 큰 모습이기 때문이다.

류성룡의 기록은 이순신 장군의 '용모' 보다 '태도'를 부각시킨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평범한 무장들과 달리 글도 잘 읽고 쓰며, 절제력이 강했다는 찬사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것. 최근에는 난중일기 등에 묘사된 대로 △괴팍할 정도로 깐깐한 군인 △온갖 고초와 스트레스로 몸이 상할 대로 상한 50대 남자의 모습이 부각되는 중이다.

'인간 이순신'의 이런 면모에 집중한 시도로는 미니어처 아티스트 김세랑 작가의 2013년 피규어(6분의1 크기)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그는 예술가로 30년 넘게 장군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김 작가는 오는 10월쯤 신작(4분의1 크기)을 통해 명량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재현할 계획이기도 하다.

김세랑 작가는 지난 2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찐터뷰'와 만나 자신이 연구해온 이순신의 모습을 설명해줬다. 김 작가의 연구와 작품은 '정답'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유력한 가능성'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해당 내용과 일부 문헌을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당당한 체형


김세랑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순신 장군의 체형은 8등신에 가깝다. 키가 큰 사람으로 묘사했다는 뜻이다. 체형도 근육질로 다부지다.


당당한 체구가 인상적인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장군 미니어처/사진=김세랑 홈페이지

김 작가는 무과에 급제한 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까지 오른 '엘리트 군인'의 모습을 상식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무과에 급제하려면 신체능력이 탁월해야 했기 때문. 무과 시험에는 기존 화살에 비해 5배 무거운 육량전 쏘기도 포함돼 있는데, 여기에는 일반인의 2~3배 가까운 용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삼도통제사를 지낸 남오성 장군(1643-1712)의 미라가 발굴된 적 있는데, 키가 무려 190㎝에 달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도 "체구가 크고 용맹이 뛰어나다"(윤휴 '백호전서')는 기록들이 있다. 체구가 작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남오성 장군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당대 평균보다 훨씬 큰 신장과 체격을 갖췄을 게 유력하다.

뚱뚱한 체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순신 장군의 과거 합격 동기인 고상안은 "생김이 풍만하지도 후덕하지도 않다"고 기록을 남겼다. 마른 체형으로 보는 게 어울릴 것이다.


②5대손과 7대손 얼굴형의 교집합


이순신 장군의 살아 생전이나 서거 직후 만들어진 초상화가 전해지는 게 없기에 얼굴 모습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순신 장군의 5대손 이봉상의 초상화가 현재까지 전해진다. '이순신의 얼굴'을 추정할 수 있는 귀한 사료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7대손 이달해의 초상화도 있다. 5대손 이봉상과 7대손 이달해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몇가지 교집합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길쭉한 얼굴형, 오똑하면서 길고 큰 코, 날카로운 눈매 등. 이같은 얼굴형을 따르는 게 그나마 이순신 장군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일 수 있다. 김세랑 작가 역시 이같은 방법으로 이순신 피규어의 얼굴 형태를 구성했다.


이순신 장군의 5대손 이봉상(왼쪽)의 초상화와 7대손 이달해의 초상화



③그을린 피부와 깊은 주름


김세랑 작가의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일각에서는 "이순신이 흑인이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까무잡잡한 피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김 작가의 묘사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무과 급제 이후 함경도에서 군 생활을 했다. 최전선에서 여진족과 전투를 벌였었다. 임진왜란 때는 해군 제독으로 활약했다.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에서 병사들을 훈련시켰고, 직접 전장에 나서온 인생이다. 뽀얀 피부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단 의미다.

김 작가가 만든 작품의 경우 얼굴에 자리잡은 깊은 주름들도 특징이다. 주름은 이순신 장군이 겪어온 고초들을 상징한다 볼 수 있다. 지혜와 체력과 용기를 쥐어짜는 것을 반복하며 전장에 나가 싸워온 무인의 고단한 삶.

실제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통해 건강이상, 신경쇠약을 호소해왔다. 밤새 작전을 구상하기도 하고, 며칠 동안 토악질을 반복하기도 한다.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이다. 명량대첩을 앞두고는 "몹시 아파 인사불성이 되었다. 병세가 무척 심하다"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④깐깐한 원칙주의자의 고뇌 담긴 표정


김 작가는 전체적으로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인상을 주게끔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이고, 왜군에 대한 적개심에 활활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원균과 같은 앙숙에게 '욕'에 가까운 말들도 쏟아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원칙주의자이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을 계속 시험에 들게 한 선조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단 한 번도 표현해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선조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승산없는 출정을 하지 않아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반역자로 누명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수군을 전멸시킬 순 없기 때문이다. 신하로의 원칙과 제독으로의 원칙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한 이유다. 이런 깊은 고뇌가 이순신 장군의 생전 얼굴에 그대로 투영됐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김세랑 작가/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김세랑 작가는 오는 10월쯤 공개할 신작에서 명량대첩 당시의 얼굴 표정을 재현하며 '분노'의 감정을 보다 강조할 것이라 했다. 김 작가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무인의 기질이 폭발하는 순간을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의 육체적·정신적 고뇌와 고통이 모두 녹아있는 '분노'를 얼굴 표정에 담을 것이란 뜻이다.


사료와 예술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진짜 이순신'


2019년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가 그린 '무인 초상화'가 이순신 장군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그림의 배경에 판옥선과 거북선이 그려진 게 이런 설에 무게를 더했다. 키스는 1919~1936년 사이 수차례 국내에 들어와 그림을 남겼는데, 그때 이순신 장군의 사당 같은 곳에서 해당 그림을 보고 그대로 모사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그림의 무인이 이순신 장군이 맞는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배경의 거북선 등이 18~19세기 양식이기에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반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옮겨 그리는 과정에서 18~19세기 거북선의 모양이 더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뉴시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에 실린 이순신 장군 초상화는 (추정)이라는 말도 함께 써있다. 사진=책과함께 제공. photo@newsis.com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키스의 이 그림과 김세랑 작가의 2013년 이순신 피규어의 얼굴에 굉장히 공통분모가 많다는 점이다. 그을린 피부, 깊은 얼굴 주름, 치켜뜬 눈, 깐깐해보이는 인상.

여전히 분명한 것은 없지만, 이순신 장군의 실체에 대해 보다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지점이 될 수는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선비, 혹은 신선 같은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김 작가는 "이순신은 슈퍼맨이 아니었다. 늙고 지쳤으며 짜증·두려움·신경질·화병과 싸우고 있는 날카로운 한 사람이었다"며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웅이 된 것이다. 그게 대단한 것이고 의미가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록과 유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며 "학술적인 바탕 아래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좀 더 실체에 근접할 결과물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예술적 상상력과 해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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