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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대박 미술감독, 피칠갑 에버랜드로 간 까닭은

[인터뷰]글로벌 영화미술계서 인정받은 채경선 감독..에버랜드와 협업해 '블러드시티6' 제작



채경선 미술감독. /사진제공=에버랜드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불리는 '오징어게임'은 탄탄한 스토리 만큼이나 '공간의 힘'이 큰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분홍과 노랑, 민트색이 섞인 '인스타 감성' 색감의 공간이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게임에 공포감을 더했다. 주연배우 이정재가 "현대미술 전시를 보러 온 것 같았다"며 감탄하고, 글로벌 영화미술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엄지를 치켜세운 이유다.

오징어게임의 세트장을 디자인한 주인공은 채경선 미술감독이다. 대종상영화제 미술상도 두 차례(2011·2015년) 수상한 베테랑으로, '제26회 미국 미술감독조합상'과 방송계 아카데미로 불리는 '제74회 미국 에미상'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석권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름값이 통하는 영화 미술 전문가로 발돋움했다.

오징어게임의 대박과 함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낸다던 채 감독이 최근 독특한 장소에서 목격됐다. 국내 대표 테마파크 에버랜드다.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공포체험존 '블러드시티'를 제작해달란 제안을 받자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 꿈과 희망의 테마파크를 피칠갑 한 좀비에게 점령당한 오싹한 디스토피아로 만들었다. 지난 28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채 감독을 만나 스크린 밖을 나온 이유를 물었다.


필모그래피엔 없는 '호러' 에버랜드서 첫 시도




채경선 감독팀이 제작한 블러드시티. /사진제공=에버랜드

채 감독은 지난 2일부터 진행 중인 에버랜드 핼러윈축제 핵심 콘텐츠인 '블러드시티6'를 기획했다. 코로나19(COVID-19) '사회적 거리두기'로 부침을 겪던 에버랜드가 최근 10대 학생들부터 2030 MZ세대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통한다. 음산한 분위기의 디스토피아적인 기차역 풍경을 탈선한 기차·터널·네온사인 등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구현하면서다.

에버랜드가 채 감독에게 SOS를 요청한 건 지난 5월이다. 바쁜 촬영 중에 굿즈제작, 전시협업 등 각종 제안이 수북하게 쌓이던 시기였는데, 채 감독은 지체 없이 에버랜드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아이와 매년 방문할 만큼 좋아하는 곳인데 엄마가 만든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생겨 좋았다"며 "팀원들도 화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구현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겠다며 적극적으로 찬성해 흔쾌히 시작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사진제공=에버랜드

채 감독이 영화 밖으로 나와 작품을 만든 건 에버랜드 블러드시티가 처음이다. 그간 호러 장르를 시도한 적도 없었다. 오징어게임으로 큰 성과를 일구자 마자 영화판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 셈이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호러를 무서워하고 프로필에도 공포영화는 없다"면서도 "공포감·기괴함에 대한 욕망은 창작자에게 좋은 소스가 된다"고 말했다.

영화판을 벗어난 작업은 채 감독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됐다. 그는 "우리팀이 자유롭게 작업한 디자인과 스케이 콘셉트를 에버랜드에서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줬다"며 "사실 영화에서도 100% 구현하기가 어려운데 에버랜드의 노하우나 순발력, 적절한 마감재 사용이 놀라워 나중에 영화 작업에서도 써먹어야겠단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테마파크 고정관념 뒤집은 디스토피아




채경선 감독팀이 제작한 블러드시티. /사진제공=에버랜드

익숙한 스크린이 아닌 새로운 장르의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설익은 곳은 없다. 오히려 영화 세트를 관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니 더욱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졌다. 오징어게임 미술감독이란 타이틀도 잊을 수 있었다. 채 감독은 "영화적 세트와 영상 미디어를 결합한 구조물을 통해 신선한 비주얼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며 "오징어게임 같은 기존 작업이랑은 연관성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블러드시티의 전반적인 콘셉트다. 채 감독은 메인 테마로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를 설정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디스토피아 세계관하면 떠오르는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에서 영감을 얻었단 설명이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곳인 테마파크에 어둡고, 축축하고, 오싹한 정반대의 분위기를 심은 셈이다. 이 같은 신선한 충격에 방문객들도 만족스럽단 반응이다.


채경선 감독팀이 제작한 블러드시티. /사진=유승목 기자

채 감독은 "코로나로 겪었던 갇혀 있고 우울한 감정을 디스토피아적으로 표현하면서 블러드시티 기차를 타고 여기서 탈출해보자는 접근을 했다"며 "염세적이고 우울한 감정들도 사람이라면 가져야 하는 당연한 것들이고, 축제라는게 항상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란 점에서 여러가지 감정이 공존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블러드시티 프로젝트를 마친 채 감독은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 협업을 계기로 다양한 K-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지도 전했다. 채 감독은 "본업인 영화미술에 충실하겠지만, 공간을 창조하는 개념이 비슷한 만큼 기회가 있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 같은 한국 영웅들의 세계관을 구현한 공간을 만들면 재밌겠단 생각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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