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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국회 문턱 못넘은 차별금지법...기독교·재계에 발목

[MT리포트] 차별금지법의 세상, 유토피아일까④

편집자주|'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논의가 본격화됐다. 나이 또는 성별, 학력 등으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누구나 공감하는 고귀한 가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차별금지법 입법이 우리 사회에 몰고올 변화를 짚어본다.
차별금지법이 또 한번 국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7년 이후 줄곧 국회의 문을 두드린 차별금지법은 14년 동안 기독교계와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청원' 10만명 돌파한 차별금지법…법사위 회부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6.15/뉴스1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최근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차별금지법 청원은 지난달 24일 공개됐는데, 이달 14일 10만명 동의를 받아 회부 조건을 충족했다. 법사위는 해당 청원과 함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6월 29일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도 함께 심의한다. 각 법안 발의에는 대표 발의자를 포함 10명, 24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위 법안의 목적은 모든 영역의 차별 금지, 차별로 인한 피해의 효과적 구제, 차별 예방과 실질적 평등 구현 등이다.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 조항이 빠졌으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14년 간 '제자리 걸음'…왜?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선관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 2021.4.18/뉴스1

차별금지법은 2007년 최초 입법 시도 이후 총 8차례(정부입법 1번, 의원입법 7번) 발의됐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논의도 거치지 못하고 좌초됐다.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와 재계의 우려가 높은 '벽'으로 다가왔다.

2007년 10월 2일 법무부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했다. 법무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이라는 제정 이유를 밝히며, 병력(질병 이력), 학력, 출신 국가와 민족, 성적 지향 등 20개 차별금지조항을 설정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계는 '성적 지향' 항목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 '동성애 허용법안'이라는 표현도 사용하며 비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재계도 '병력이나 학력 차별 금지 조항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며 반대했다. 차별금지법 시행에 따른 사업장 별로 지출될 시설 개보수 비용 등도 문제라는 지적도 일었다. 그 결과 '성적 지향' '학력' 등 7가지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됐지만 이마저도 2008년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8~19대 국회에서는 노회찬·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했으나 회기 만료 등으로 모두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시도는 있었지만 법안 발의 요건인 의원 10명이 모이지 않은 것이다.

조영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18·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과도한 항의를 받아서 20대 국회 동안에도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 못한 면이 있다"며 "다만 최근 성소수자의 극단적 선택, 고용·외국인·여성 차별 이슈가 관심을 많이 받다보니 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최근 관련 법안 발의의 배경으로 작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인권위 "평등법, 21대 국회의 우선 과제"…법원도 '차별 인정' 확대 기조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장병 건강권 보장 및 군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5.25/뉴스1

국가기관도 '차별 철폐' 방향에 힘을 싣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1일 성명을 통해 "평등법 제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라는 간절함으로 15년을 기다려 온 국민의 준엄한 요청"이라며 "제 21대 국회가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평등법 제정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헌법의 평등권을 구체화하고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평등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법무부 입장을 밝혔다. 다만 "차별 금지 사유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으므로 적절한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더했다.

법원도 재판에서 '차별 인정의 폭'을 점점 넓히는 추세다. 김기윤 변호사(김기윤법률사무소)는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 호주제,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며 차별 금지 기조를 띄어 왔다"며 "간통죄를 폐지하면 간통을 형사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법원 판결도 헌재 기조에 맞춰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민사 법원에서도 여성 상속 비율이 점점 남성과 동등하게 변해가고 있다"며 "헌재 결정이나 판례를 보면 차별 금지의 영역의 확대가 큰 흐름이다. 차별 금지 영역은 부딪혔다 뚫렸다를 반복하며 넓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차별에 대한 형사처벌 필요성, 종교 활동 위축 가능성은 법 시행 후 논의를 통해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기업이 차별금지법에 따르면서 지출하게 될 일부 비용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원하도록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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