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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실적 좀 올려줘"…아이폰 3개 개통, 미납금 400만원 쌓였다

[버려지는 장애인들]③"무연고 지적장애인, 후견제도 손 봐야"

편집자주|매년 100여명 장애인이 버려지고 있다. 버려진 장애인들은 장애와 고아라는 이중고를 견디며 살아야 한다. 현재 전국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 중 부모가 없는 장애인은 7000여 명. 버림받은 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지적장애인 박소현씨(24·가명)는 갓난아기 때 혼자 남겨졌다. 부모님은 박씨를 부산의 어느 보육원(고아원)에 맡겼다.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보육원에 기록이 남아 있지만 박씨는 굳이 기록을 찾아보지 않았다. 박씨는 "지금까지 날 찾아오지 않았다"며 "(부모님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2009년 서울의 장애인 거주시설 '은평 기쁨의집'에 옮겨졌다. 스무살이던 2019년 8월 자립했다. 박씨 수중에는 정부 지원금 등을 모은 2000만원이 있었다.

박씨보다 먼저 자립한 시설 언니 세명과 가깝게 지냈다. 이들 모두 지적장애인이었다. 언니 중 한명은 박씨에게 서울 서대문구의 한 휴대폰 대리점을 추천해줬다. 이듬해 8월 박씨는 그 대리점에서 당시 신상이었던 아이폰11을 개통했다.

아이폰만 구매한 게 아니었다. 박씨는 인터넷 등 결합상품에 함께 가입했다. 당시 대리점 직원들은 "결합상품에 가입해야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박씨는 직원 말을 듣고 계약서에 서명했고 그날 인터넷 1개, IPTV 상품 3개, 태블릿PC용 모바일 요금제 1개, 테이블TV 1개를 구매했다. 당시 박씨 집에 인터넷이 이미 설치돼 있었다.

돌이켜보면 박씨는 결합상품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박씨는 지능지수(IQ)가 35~49 정도인 중증 지적장애인(구 2급)이다. 비장애인도 읽기 어려운 계약서상 내역을 꼼꼼히 읽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리점 직원들은 박씨에게 대리점을 추천한 언니를 통해 박씨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박씨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카카오톡으로 연락했고 박씨를 이름으로 불렀다.

이들은 같은해 12월 '실적이 부진하다'며 박씨에게 휴대폰을 사달라고 했다. 이들은 차를 끌고 박씨 집에 찾아와 박씨를 대리점으로 데리고 갔다. 박씨는 그날 아이폰12를 추가로 샀다.

결합상품도 가입했다. 대리점 직원들은 박씨 집의 인터넷, IPTV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중복 가입시켰다.

이듬해 1~2월 대리점 직원들은 박씨 명의로 인터넷, IPTV, 홈IOT 서비스를 가입해 본인들 집에 설치했다. 요금은 박씨가 지급하도록 했다. 당시 통신사는 결합상품 가입자에게 30만원 상당 리워드(보상금)를 지급했다. 박씨는 해당 리워드를 받지 못했다.

같은 해 3월 박씨 집에만 인터넷 2개, IPTV 상품 3개, 테블릿PC용 모바일 요금제 1개, 테이블TV 1개가 가입돼 있었다. 미납된 할부금은 425만원이었다.

매달 할부금 수십만원이 청구됐다. 박씨는 공공후견인이 통장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청구 금액이 앱으로 통지돼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지적장애인으로서 숫자 파악이 힘든 영향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리점 직원들의 거짓말이 문제였다. 직원들이 본인 집에 인터넷, IPTV를 설치할 때 설치기사의 전화는 대금을 결제한 박씨에게 갔다. 박씨는 '기기 설치하러 왔는데 설치 장소가 맞나요' 묻는 설치기사 전화를 여러번 받았다. 대리점 직원에게 무슨 일인지 물으면 직원은 "내가 처리할 테니 신경 쓸 것 없다"고 했다.

나중에 퇴소한 시설 사회복지사들이 박씨의 상황 파악을 돕고 박씨가 해명을 요구하자 직원들은 "네 앞으로 지원금이 많으니 9개월만 사용하고 해지하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라고 했다. 이들은 박씨가 항의하고서야 그동안 청구된 금액을 이체해줬다.


휴대폰 대리점에서 제시한 계약서. 박소연씨(24·가명) 서명란을 보면 박씨 성(姓)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박씨는 자신 서명이 아니라며 대리점 직원들이 허위 계약서를 썼다고 주장한다./사진=김성진 기자

박씨는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번호 3개를 개설했다. 아이폰12가 세대 있어야 했다. 박씨가 받은 휴대폰은 아이폰 12 한대, 아이폰 7 한대였다. 박씨는 한대가 아이폰 7인지도 나중에 알았다. 박씨는 항의한 후에야 아이폰 12 두대를 받았다.

박씨는 대리점 직원들을 준사기,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지적장애인을 속였기 때문에 준사기 범죄라고 봤다. 또 일부 계약서에 서명이 자기 서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다. 박씨가 직접 계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사기는 없다고 봤다. 사문서위조 '증거불충분'으로 판단했다.

박씨는 이 일을 겪고 부모의 부재를 느꼈다. 부모와 함께 대리점을 찾았거나, 부모가 청구 요금을 확인해줬다면 피해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상술에 쉽게 혹하는 장애인들...'미납' 뜻도 몰랐다





가족이 없는 장애인은 공식적으로 '무연고 장애인'이라 부른다. 이들이 대리점 직원 상술에 혹해 필요 없는 결합상품에 가입하거나 과하게 자주 휴대폰을 바꾸는 일은 흔하다.

지적장애인 최의용씨(44)는 장애수당이 입금되는 통장을 압류당한 상태다. 최씨는 은평에 사는 3~4년 사이 휴대폰을 10여차례 바꿨다. 휴대폰 대리점은 최씨가 지적장애인인 사실을 알고 수시로 전화했다.

최씨는 휴대폰 대금 400~500만원을 미납했다. 공공후견인인 이정훈 목사가 독촉장을 발견하기 전까지 최씨도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장애인 경제적 착취' 사건은 366건 발생했다. 경제적 착취에는 △본인 명의 휴대폰을 2개 이상 가지고 있거나 휴대폰 소액결제가 자주 발생 △본인이 사용하지 않은 휴대전화 요금이 빠져나감 등 상술 피해가 포함된다.



지적장애인 최의용씨(44)는 지난 3~4년 동안 휴대폰 10여대를 샀다가 400~500만원 대금을 내지 못하자 통장을 압류당했다. 최씨는 해당 통장으로 매달 4만원 장애수당을 받고 있었다. 휴대폰 대리점은 최씨가 장애인인 사실을 알고 수시로 전화했다. 최씨는 통신사 3사 미납 대금이 한도에 다다를 때까지 휴대폰을 개통했다./사진제공=최의용씨.

무연고 장애인은 이런 상술 피해를 보고도 늦게 알아차릴 위험이 크다. 최씨는 지적장애 때문에 미납 고지서를 보고도 '미납'의 뜻을 이해하지 못 했다.

최씨의 후견인 이정훈 목사는 "부모가 있었다면 미납 고지서를 보고 상황을 알려줬을 것"이라며 "악의를 갖고 최씨 같은 무연고 장애인을 속이는 사람도 있는데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서 대처가 느린 편이다"라고 했다.

민법은 과거에 있던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를 폐지하고 '성년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성년후견인과 공공후견인은 다르다. 성년후견인은 법원이 정한 후견인으로 휴대폰, 인터넷 계약을 해지할 권한을 가진다. 공공후견인은 그런 권한은 없다.

무연고 장애인의 장애 수준이 약할수록 성년후견인을 신청하는 일이 드물다. 자기결정권을 제약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상술에 당했을 때 피해도 커질 우려가 있다.

무연고 장애인이 상술 피해로부터 자신을 지킬 제도는 어느 정도 마련됐다는 평가다. 해당 제도에는 재산 처분을 맡기는 신탁, 공공후견인, 활동지원사 제도가 있다.

무연고 장애인이 제도를 거부하면 제3자가 나설 방도는 없다. 이정훈 목사는 "공공후견인이 계약을 완전 해지할 수는 없더라도 후견인이 지정된 무연고 장애인이라면 비장애인보다 계약 해지할 기간을 늘리거나 공공후견인 권한을 늘릴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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