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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박용만 마지막까지… "한국 젊은이들은 왜…"

"왜 한국 젊은이들은 뭘 해보기도 전에 안 되는 이유를 들어야 합니까. 동일한 연령대에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젊은이들은 그런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자기 꿈을 폅니다. 현재의 법과 제도로는 미래를 담을 수 없습니다."

임기 만료를 한달여 앞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마지막까지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의 회관에서 진행된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다.

박 회장은 지난 7년8개월 동안 직접 발로 뛰며 수많은 지원 법안을 이끌어냈지만 아직 한국 사회가 다가오는 시대를 수용하기는 역부족이라 진단했다. 박 회장은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청년 기업인들을 위한 응원과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출입기자단과 퇴임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대한상의



직원과 보낸 시간 271시간 45분
언론인과의 만남 231시간 55분
정부와의 회의 211시간
국회에서 72시간 45분
비행횟수 161회, 비행시간 847시간 58분


박 회장은 2013년 8월 대한상의 회장에 선출된 뒤 임기 내내 '규제 혁파'에 매달렸다. 그 중에서도 국회를 다닌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의원회관 빌딩 안에서만 7㎞를 걸은 날도 있었고 셔츠가 땀에 젖어서 갈아입은 날, 무릎이 아파서 테이핑을하고 간 날도 있었다"며 "어느날은 손녀가 TV를 보다가 할아버지 회사라고 해서 보니까 국회 영상이었다"고 했다.

발품을 팔며 설득에 힘을 쏟았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국회에 문을 두드리고 정부를 찾아가서 바꿔달라고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잘 안 됐다"며 "처음에는 분노하고 서러웠지만 시간이 가면서 보니까 누굴 비난할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각자의 입장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바꿔야 하는 이유보다 그대로 둘 이유가 많은 현실에서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법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끈질김 속에서 묘수가 떠올랐다. 법과 제도를 우회해서 먼저 일을 벌이고 실증을 통해 법과 제도를 바꿀 당위성을 찾아보자는 생각의 전환이었다. 그렇게 샌드박스가 탄생했다.

단순히 규정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닌, 혁신 패러다임의 변혁이었다. 규제샌드박스는 벤처·스타트업에 '혁신의 실험장'이 돼줬고 시행 2년만에 410건의 혁신 제품과 서비스가 승인됐다. 지난해 5월에는 민간 샌드박스 채널인 '대한상의 샌드박스 지원센터'가 출범했다. 220여건의 혁신과제를 발굴해 91개 사업에 기회의 문을 열었다.



열정 뒤에는 미안함…"현 제도로는 미래를 담을 수 없어"


박 회장은 규제 혁신에 열정을 쏟은 배경에 한국 젊은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젊은 창업가들이 일을 하다가 안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줬다"며 "그러다보면 '이 분들이 왜 이런 설명을 들어야하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 같은 어른들이 제때 숙제를 못했기 때문"이라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미안했다. 정말 수도 없이 미안하다고 했고 진짜로 미안했다. 그래서 더 매달렸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미래를 담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좀 더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이제부터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상상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기술과 사업들이 태동하고 그동안의 사업도 새롭게 융합해 바뀐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며 "현재 법과 제도로는 그런 미래를 담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산업이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사업 전체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각에 맞춰 환경을 바꿔야 할 시기라는 점도 강조했다. 박 회장은 "과거부터 해오던 업종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고 강력했던 업종들이 신흥국가로부터 잠식당하는 상황"이라며 "기업의 목소리를 볼멘소리로 볼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이 어떻게하면 건강한 성장을 이룰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출입기자단과 퇴임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대한상의



'최태원호 상의'에 기대…"청년 사업가 지원은 계속"


후임자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끌어갈 대한상의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표했다. 박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최 회장이) 충분히 저보다 잘 할 분이라 생각해 마음 놓고 떠난다"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이) 4차 산업혁명에 가까운 업종에서 일하고 있고 이번에 회장단을 구성하는 것을 보면서 미래 방향에 대해 저보다 훨씬 잘 대변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임기를 마친 이후 계획에 대해선 "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으로 끝까지 소임을 다하겠다"면서도 청년 사업가들을 위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는 "전화하거나 도움을 청하면 어떤 일이 됐든 몸을 사리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한 조언을 늘어놓기보단 '박용만스럽게' 직접 몸으로 뛴다는 계획이다. 박 회장은 "제가 가진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 이 시대에 맞는 조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막힌 부분이 있어서 누굴 설득해야 한다거나, 대신 만나야 한다거나, 제가 제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을 가리지 않고 도와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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