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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땐 밥만! [웰빙에세이]

[웰빙에세이] 빼기:도 –6 / 먹기 명상과 밥 먹는 道







밥 먹을 때 밥만 먹나요? 반찬도 먹고 물도 마신다구요? 그렇군요. 그런 거 다 쳐서 밥 먹을 때 밥만 먹나요?

먹기 명상을 할 때는 보통 그렇게 합니다. 찬찬히 밥 먹는 과정을 살피면서 밥만 먹습니다. 밥맛을 음미하면서 밥만 먹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매우 어렵더군요. 거의 자동이 된 일을 갑자기 수동으로 하려니까 헷갈려서 밥맛이 나지 않더군요. 몇 번 해보다가 도로 물렸습니다.

그 대신 다른 수를 쓰기로 했습니다. 밥을 아주 느긋하게 먹는 겁니다. 이것도 얼마나 느긋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서 한 가지 방편을 더 썼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든 제일 늦게 숟가락을 내려놓는 겁니다. 일일이 밥 먹는 과정을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밥맛을 음미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느긋하게만 먹으면 됩니다. 지금 이 밥상에서 맨 마지막이 될 때까지 마냥 느긋하게! 이것이 결국 먹기 명상과 비슷하게 될 거라고 본 거지요.

이 방법은 나름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느긋하게 먹는 게 몸에 배어 남들처럼 빨리 먹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 밥도 더 오래 씹고 밥맛도 더 즐기게 됐지요. 밥 먹을 때의 道는 역시 밥만 먹는 겁니다. 다른 일은 다 빼고 맛있게 밥만 먹는 겁니다. 얼른 먹고 딴 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오로지 밥만 먹는 겁니다. 이렇게 먹으면 밥맛도 나고 감사하는 마음도 우러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다시 샛길로 빠졌습니다. 너무 느긋해져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먹고, TV를 보면서 먹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먹고,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먹고……. 밥 먹는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면서 세월 가는 줄 모르게 된 겁니다.

밥 먹는 건 일도 아니라며 마음은 자꾸 다른 일을 덧붙입니다. 심심하게 어떻게 밥만 먹냐며 자꾸 가욋일을 끌어들입니다. 그 마음의 덫에 또 걸려들었습니다. ‘얼른 먹고 딴 일 하자’는 덫을 피하고 방심하다가 ‘느긋하게 딴 짓 하면서 먹자’는 덫에 걸려든 거지요. 그래서 밥 먹으며 하염없이 딴 짓에만 정신을 팝니다.

하루 두 끼를 한지 10년이 됐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 마음의 덫을 확인할 수 있는 거지요. 그 덫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얼른 먹고 딴 일 해야지’ 하는 덫. 전에는 주로 이 덫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치울 것을, 치울 때는 쉴 것을 생각하며 달렸습니다. 쉴 때는 또 일할 것을 생각하며 달렸지요. 결국 단 한 번도 ‘지금 하는 일’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다음 할 일’에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딴 짓 하면서 먹어야지’하는 덫. 이른바 멀티 태스킹입니다. 음악도 듣고, 뉴스도 보고, 메일도 살피고, sns도 하면서 밥을 먹으니 아주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다 대충 대충이지요. 음악도, 뉴스도, 메일도, sns도 모두 밥 먹는 일의 배경 소음처럼 어수선합니다. 밥맛도 결국 어수선합니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으며 밥을 즐기는 것! 밥 먹을 때의 도는 이렇게 간단합니다. 누구나 하루 두세 번 이 도를 닦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바쁘게 앞으로만 내달리는지, 아니면 얼마나 어수선하게 여러 가지 일을 뒤섞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나 오락거리나 노래 가락을 배경 소음으로 깔아놓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먹거나, 헐레벌떡 허겁지겁 먹어치우거나, 지지고 볶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거나, 살찔까봐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며 먹는다면 아! 우리는 얼마나 먹는 도에서 멀어진 것인가요? 어느 세월에 제대로 한 번 먹어 볼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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